재일조선인
재일조선인이 던지는 질문-민족이란 무엇인가, <녹색평론>06/07



시사저널 / 특별한 동생들  

시사저널/문화비평 07/ 공숙영


‘시다’와  ‘디아스포라’ , 특별한 동생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1950년대에 태어나 6~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으며, 누군가의 동생으로 살아야 했고 또 세상에 알려졌다는 점.

전순옥. 1970년 11월 13일에 “노동자도 인간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면서 분신한 전태일의 여동생. 서경식. 1971년 소위 재일교포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서승, 서준식의 남동생. 서승, 고문을 받던 중 분신자살 시도, 목숨은 건졌으나 얼굴과 상반신에 엄청난 화상. 서승 19년, 서준식 17년 복역.

전순옥은 평화시장과 창신동에서 노동하고 활동하다가 만 서른 다섯 살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1970년대 한국 여성노동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잠시 대학에 재직하다가 다시 창신동으로 돌아와 현재 여성노동자 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박사학위논문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They are not machines)>는 현지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책으로 출판되었고 국내에도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서경식은 형들이 옥중에 있는 동안 양친이 다 돌아가시고 나서 만 서른 두 살에 처음 외국 여행을 떠나, 그 감상을 묶어 마흔의 나이에 여행기(국내에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로 번역된)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문필가의 삶을 시작했다. 그 후 문화예술론, 인권과 재일조선인 문제에 대해 꾸준히 독보적인 저작을 낸 그는 현재 한 대학의 연구교수로서 초청되어 국내에 체류하고 있다.

내가 속한 단체의 월례 북포럼 행사에 두 분을 연사로 모실 기회가 있었다. 이들의 얼굴을 처음으로 직접 본 순간, 공통적으로, 역사적 고통이 가족의 상처로  와 닿아 자신의 삶까지 극적으로 변화된 존재에 대한, 아울러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그간 치른 개인적 분투에 대한 존경의 염 같은 것이 솟아나는 걸 금할 길이 없었다.

두 사람 다 인생의 돌파구가 필요했던 때에 ‘외부’로 떠나 새로운 지평을 구했던 사정도 주목할 만하다. 여성 노동자로서 열 여섯 살부터 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전순옥과 재일조선인 2세로 일본에서 태어나 살아온 서경식의 경우에, ‘외부’의 함의 및 필요성은 그 맥락이 구체적으로 동일하진 않아도, 절실하긴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전통가치를 내세우는 남한의 가족 내에서 젊은 여성의 위치는 사다리의 맨 마지막이었다. 이들은 가족 전체의 문제나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을 가지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순종하는 태도를 취해야 했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양보를 받으면 정중하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했다. 고분고분한 정신은 남자들에게는 편리하고 편안하게도 20세기의 산업적 직장에서 여성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전순옥,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

“대체 무엇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가? 구태여 말한다면 일본 바깥의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다. 일본이라는 공간은 내게 있어서, 조금씩 공기가 희박해지는 지하실과 같다. 아니면 염천(炎天)에 달구어져 지글지글 수분이 증발해가는 작은 웅덩이와 같다.”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특별한 시대에 특별해져야 했던 누군가의 동생임과 동시에, 스스로도 공장의 ‘시다’로서, 타국의 ‘디아스포라’(“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로부터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 – 서경식, 위의 책)로서 살아온 그들. 전순옥이 마음 속 최후의 장벽을 딛고서 유학 시절 만난 영국인 남자와 결혼하고, 서경식이 팔레스타인 난민 아이와 양부모결연을 맺어 지원하게 된 과정과 사연은, 그들이 삶의 조건에 충실하면서도 거기에 갇히지 않는 자유롭고 독자적인 존재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특별한 동생들의 특별한 삶은 특별한 울림을 자아낸다.  
by mohum | 2006/11/21 17:03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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